(왕조의복음17) 열왕기상 22:1-53 / 불리하면 거부한다 / 서창희목사 / 한사람교회

설교 주제 말씀과의 충돌, 그리고 우연을 통섭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십자가의 구속
분류 서창희 목사
설교 요약
본 설교는 아합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인간이 왜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도 결정적인 순간에 거부하게 되는지 그 원인을 짚어봅니다. 우리의 삶에 내 뜻과 이익이 먼저 세워져 있을 때, 말씀이 내 계획과 충돌하면 우리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말씀을 거부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세계관과 달리 우리의 생명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으며, 우연처럼 보이는 모든 인생의 영역 또한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습니다. 결국 말씀과 충돌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심판을 담당하셨기에, 우리는 모든 불안과 통제욕을 내려놓고 주 안에서 진정한 평안과 담대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내 생명이 내 뜻과 자존심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기에, 뜻이 꺾여도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설교의 흐름
들어가는 말
왕조의 복음 열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은 분리하면 거부한다는 제목으로 아합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아합이 무엇과 충돌하고 있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합은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마지막 기록은 우리가 늘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즐거워하면서도 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결정적으로 역사하지 못하는지 그 원인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이 답하고 있는 질문은 바로 말씀과의 결정적인 충돌 지점은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디서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하였고, 그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지 세 가지로 나누어 살피겠습니다. 첫째로 살필 것은 말씀의 지배입니다.
아람 왕이 사마리아에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은 은혜를 주셔서 아람 왕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나단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조약을 맺어 그를 놓아주었습니다.
베나닷 1세가 죽고 아들 베나닷 2세가 되었으나 사마리아에 돌려주기로 했던 땅을 자꾸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아합은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마침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놀러 오자 길르앗 라못을 다시 빼앗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며 머리를 쓰기 시작합니다.
설교의 흐름
말씀을 읽으며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함께 길르앗 라못을 치러 가자고 제안합니다. 여호사밧은 아합보다는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었기에 함부로 전쟁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어봐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아합은 자신의 백성인 선지자 400명을 불러 물었고, 그들은 모두 기쁨조처럼 하나님이 승리를 주실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영적으로 이상함을 느끼고 다른 선지자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아합은 미가야라는 사람이 있지만 자신에게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않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에 그를 미워한다고 대답합니다. 여호사밧의 권유로 마지못해 미가야를 불렀을 때, 미가야는 처음에는 비꼬듯 승리를 예언하다가 진실을 말하라는 아합의 거듭된 다그침에 결국 진심을 전합니다.
미가야는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으니 평안히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즉 전쟁에서 패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찾고 듣기를 원하면서도, 실제로 내 삶에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일하지 못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이 내 뜻과 맞지 않을 때, 그대로 행하면 내 세운 모든 계획이 틀어지고 손해가 생길 때 나타납니다. 아합의 마음에 이미 길르앗 라못을 차지하려는 자기 뜻과 계획이 확고하게 서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계획과 부딪힐 때 말씀을 거부하고 화를 낸 것입니다.
설교의 흐름
핵심 메시지
우리의 삶에서도 내 뜻이 너무 강하고 내 자존심이 먼저 있으면 그것이 꺾이는 순간을 견디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 뜻과 자존심에 자신의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존심이 꺾이면 곧 생명이 무너지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세계관은 이와 완전히 다릅니다. 성경은 내 뜻에 생명이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내 생명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존심이나 내 뜻이 꺾여도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생명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면, 말씀대로 가기 위해 뜻이 꺾이고 자존심이 꺾이는 것은 결코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 세상은 아무리 우리가 통제하려 해도 우연성의 지배를 받습니다. 아합이 왕복을 벗고 변장하여 철저히 살아남으려 했지만, 한 사람이 무심코 당긴 화살이 갑옷 솔기 사이에 들어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처럼 세상에는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이 가득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고백하듯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조차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우연과 불안 속에서도 참된 구원과 섭리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말씀과 충돌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당해야 할 최종적인 충돌과 심판의 저주를 모두 담당해 주셨습니다.
설교의 흐름
삶으로 이어지는 권면
우리는 일상에서 내 뜻대로 되지 않고 굽혀야 하거나 꺾여야 하는 순간을 마주할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마치 내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것은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굽히고 꺾어 보라 제안하실 때, 그것은 우리가 죽는 길이 아니라 살리는 길이며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알게 하시는 은혜의 기회입니다. 생명이 내 뜻이나 자존심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진리를 붙들 때, 우리는 비로소 내 자존심을 내려놓는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우연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내 인생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안에 붙들려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아직 말씀의 최종적인 충돌인 재림의 날은 오직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거나 내 뜻을 고집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오늘 속히 회개하고 말씀의 편에 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의 모든 저주와 사망을 가져가셨음을 믿을 때, 우리는 어떤 우연한 상황과 질병과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얻게 됩니다.
내 뜻을 꺾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참된 열매를 맺는 길입니다.
설교의 흐름
맺음말
우리의 삶에 유리할 때만 말씀을 찾고 분리할 때 거부하던 어리운 고집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판단과 내 자존심이 내게 생명을 줄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굽히고 꺾으실 때 그것이 기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모든 인생의 수많은 일들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으며, 그 섭리 속에 우리의 구원이 확실하게 담겨 있습니다. 나와 충돌하지 않으시고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그 은혜를 찬양합니다.
아직 최종적인 말씀의 충돌 날이 오지 않았기에, 오늘 이 자리에서 속히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말씀 편에 서야 합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고 내 삶과 마음에 주가 주인 되실 때, 우리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자존심이 꺾여도 살 수 있음을 믿으며, 우연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담대히 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주 안에서 내 영혼이 다시 태어나 새롭게 된 은혜를 누리며, 주님 주시는 평안 가운데 한 주간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의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핵심 포인트
- 아합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하였으며, 이는 우리 삶에서 말씀이 역사하지 못하는 원인을 보여줍니다.
- 우리는 말씀에 동의하면서도 내 뜻과 계획, 이익에 부딪힐 때 결정을 내리는 순간 말씀을 거부합니다.
- 세상 사람들은 뜻과 자존심에 생명이 있다고 보지만, 성경은 우리의 생명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고 말합니다.
- 생명이 말씀에 있으므로 자존심이나 내 뜻이 꺾여도 우리는 죽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은 굽히고 꺾일 기회입니다.
- 아합의 죽음 속 화살의 사건처럼 세상에는 우연이 존재하지만, 그 모든 우연 또한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우연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궁극적으로 구원받은 자들에게 선하게 작용합니다.
-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이 되어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최종적인 충돌과 심판의 저주를 막아 주셨습니다.
- 아직 말씀의 최종적인 충돌인 재림의 날이 오지 않았기에, 우리는 속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 내 뜻을 꺾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연적이고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참된 평안과 담대함을 누리게 됩니다.
말씀 본문
열왕기상 21장 19절 · 열왕기상 22장 1절 · 열왕기상 22장 7절 · 열왕기상 22장 15절 · 열왕기상 22장 16절 · 열왕기상 22장 17절 · 열왕기상 22장 18절 · 열왕기상 22장 30절 · 열왕기상 22장 34절 · 열왕기상 22장 37절 · 열왕기상 9장 8절 · 요한복음 1장 1절 · 요한복음 1장 14절 · 요한계시록 22장 12절
오늘의 묵상
마음에 남은 말씀
내 뜻에 생명이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내 생명이 있다는 가르침이 오늘 제 마음을 깊이 파고듭니다. 그동안 나는 내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불안해하고 자존심을 세우며 살아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생명이 말씀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되새겨 볼 때, 내 뜻이 조금 꺾이고 부족해 보여도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위로를 얻습니다. 주님 앞에서 내 고집을 내려놓고 말씀을 가장 귀한 것으로 붙드는 삶이 무엇인지 차분히 마음으로 그려보게 됩니다.
들으며 느낀 마음
설교를 들으며 내 안에 얼마나 많은 내 뜻과 계산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 차분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거나 결정을 내릴 때도 겉으로는 의견을 묻는 척하지만 결국 내 생각대로 밀어붙이려던 모습들이 떠올라 부끄러웠습니다.
세상은 자존심과 내 뜻이 곧 생명이라고 가르치기에 그것이 꺾이면 전부를 잃는 것처럼 두려워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연처럼 보이는 수많은 불확실성과 통제할 수 없는 일들조차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고 말씀해 줍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해 충돌의 저주를 담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잔잔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의 삶에 적용
내일부터 다시 시작되는 학교 수업과 과제 준비를 앞두고, 내 계획대로 풀리지 않아도 조급해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조용히 도서관 자리에 앉아 다가오는 취업 준비와 진로 문제로 마음이 흔들릴 때,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겠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성과의 비교 속에서 자존심이 상할 때 그것을 내 생명의 위기로 여기지 않고, 작은 일 하나에서도 내 뜻을 굽히는 여유를 가지겠습니다. 하루를 마치고 혼자 방에 돌아와 깊은 한숨을 쉬며 하루를 돌아보는 밤에도, 내 삶을 붙드시는 주님의 선하신 손길을 조용히 신뢰하며 잠자리에 들겠습니다.
말씀과 나의 연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우연한 상황들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때가 참 많습니다. 강의실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거나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마주할 때, 내 자존심이 상하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아합이 자신의 계획만을 고집하다 결국 무너졌던 것처럼, 내 고집을 붙드는 것은 결국 영혼을 갉아먹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세상의 기준대로 자존심을 목숨처럼 붙들고 사는 대신, 내 생명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진리를 일상 속 선택들 앞에 정직하게 마주해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내 뜻과 자존심을 내 생명처럼 붙들며 조급하게 살아왔던 제 연약한 모습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연처럼 보이는 수많은 불확실한 일상 속에서도 제 삶을 선한 섭리로 이끄시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기를 원합니다. 굽히고 꺾여야 할 기회를 마주할 때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의 말씀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오늘을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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