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위임목사] 나를 따르라 (5) 마르지 않는 시냇가에 뿌리를 내리다 (시편 1:1-6) | 2026.06.14 | 온누리교회

설교 주제 마르지 않는 시냇가에 뿌리를 내리다 — 묵상이라는 되새김질로 그리스도께 뿌리내리기
분류 이재훈 목사
설교 요약
이재훈 목사님은 "나를 따르라" 시리즈 다섯 번째 메시지로, 시편 1편 1~6절 말씀을 통해 "마르지 않는 시냇가에 뿌리를 내리다"를 전합니다. 사하라 사막 한복판, 400km 안에 다른 나무가 없는 곳에서 홀로 살아남았던 "테네레의 나무"(뿌리가 36m 깊이 지하수까지 닿아 있었음이 1938년 밝혀짐)와, 안네 프랑크가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위로받았던 유명한 암스테르담의 마로니에 나무(겉은 무성했지만 속이 썩어 2010년 폭풍에 부러짐)를 대조하며, 나무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크기나 명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뿌리라고 강조합니다.
지난 4주간 배운 제자도의 본질(그리스도와의 연합, 갈망)을 이어가며, 오늘은 그 연합을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내리는 구체적 실천으로 살펴봅니다. 3절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서 "심은"이라는 표현은 자연히 자란 것이 아니라 농부가 의도적으로 옮겨 심은 상태를 뜻하며, 시편 92편의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라는 표현과 연결해,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 농부이신 하나님이 메마른 자리에서 우리를 뽑아 마르지 않는 시내(그리스도) 곁으로 옮겨 심으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1절 "복 있는 사람"은 단수로 쓰였는데, 목사님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은 사람은 사실 우리 중 아무도 없으며, 이 조건에 온전히 해당하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라고 짚습니다. 시편 1편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접붙여짐으로 그분의 의와 복을 함께 누리게 되었다는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2절 "율법을 즐거워하여 밤낮으로 묵상하는"이라는 표현에서, 히브리어 "하가"는 조용한 사색이 아니라 짐승이 으르렁거리거나 되새김질할 때 나는 소리와 관련된 단어임을 짚으며, 랍비들은 이를 "되새김질"로 해석했다고 설명합니다. 한 뇌과학자의 다큐멘터리를 인용해 반복해서 읽기만 하는 것보다 덮고 떠올려보는 과정이 기억력을 높인다는 것을 소개하며, 마르틴 루터가 묵상을 읽기·되새김질·시련(안페히퉁)의 세 단계로 나눴던 것을 언급합니다. 스펄전 목사가 성경을 무릎 꿇고 20번 읽었는데도 은혜를 깨닫지 못했다는 성도에게 "그것이 문제입니다, 고행하듯 읽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던 일화와, 한 목회자가 성경 통독은 배속을 올려 빨리 넘기면서 좋아하는 드라마는 대사 하나 놓치지 않으려 다시 돌려봤다고 고백했던 일화를 통해, 우리가 정말 무엇을 즐거워하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3절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는 1년 내내 열매 맺는 나무가 없듯, 필요한 때에 합당한 열매(시험 중의 인내, 고난받는 이를 향한 긍휼 등)가 맺어진다는 뜻이며, 그 열매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내가 되신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기에 맺어지는 것입니다. "형통하리로다"도 상황의 형통만이 아니라, 때로 하나님이 환경의 형통을 허락하지 않으심으로 영혼의 형통을 이루신다고 설명합니다. 4절은 반대로 "바람에 날리는 겨"를 대조하는데(히브리어로 나무는 "에츠", 겨는 "모츠"로 운율을 이룸),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바람 앞에 뿌리내리지 못해 교회를 떠난 채 돌아오지 않은 이들의 예를 듭니다.
설교는 5~6절, 1절에서 홀로였던 "복 있는 사람"이 사실 혼자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많은 나무들, 곧 의인들의 모임(교회)을 이루고 있었다는 반전으로 이어지며, 요한복음 15장에서는 우리가 가지이고 그리스도가 포도나무였다면 시편 1편에서는 우리가 나무이고 그리스도가 시냇가라는 것, 생명의 근원은 언제나 우리 자신이 아니라 더 위쪽에 있다는 메시지로 마무리됩니다. 테네레의 나무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뿌리를 뻗어 내렸듯, 아무도 보지 않는 은밀한 시간에 말씀을 즐거워하며 뿌리내리는 것이 제자된 삶의 깊이를 결정한다는 권면으로 설교를 맺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설교의 흐름
두 나무 이야기 — 테네레의 나무와 암스테르담의 마로니에
사하라 사막에서 뿌리가 36m 깊이 지하수까지 닿아 홀로 살아남았던 테네레의 나무와, 겉은 무성했지만 속이 썩어 2010년 폭풍에 부러진 암스테르담의 마로니에 나무를 대조하며, 나무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크기나 명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뿌리라고 강조합니다.
설교의 흐름
옮겨 심겨진 나무 —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이식
3절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서 "심은"은 농부가 의도적으로 옮겨 심은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 농부이신 하나님이 메마른 자리에서 우리를 뽑아 그리스도 곁으로 옮겨 심으셨기 때문입니다.
설교의 흐름
복 있는 사람은 단수다 — 오직 그리스도
1절 "복 있는 사람"은 단수로 쓰였는데, 이 조건에 온전히 해당하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시편 1편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접붙여짐으로 그분의 의와 복을 함께 누리게 되었다는 복음입니다.
설교의 흐름
묵상은 되새김질이다 — 하가라는 단어의 의미
2절 "밤낮으로 묵상하는"의 히브리어 "하가"는 조용한 사색이 아니라 짐승이 되새김질할 때 나는 소리와 관련된 단어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묵상을 읽기·되새김질·시련의 세 단계로 나눴습니다.
설교의 흐름
무엇을 즐거워하는가 — 스펄전과 한 목사의 고백
스펄전 목사가 성경을 20번 읽고도 은혜를 깨닫지 못했다는 성도에게 "고행하듯 읽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던 일화와, 성경 통독은 배속을 올리면서 좋아하는 드라마는 다시 돌려봤다는 한 목회자의 고백이 우리가 무엇을 즐거워하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설교의 흐름
철을 따라 맺는 열매, 바람에 날리는 겨
3절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는 필요한 때에 합당한 열매가 맺어진다는 뜻이며, 그 열매는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기에 맺어집니다. 4절의 "바람에 날리는 겨"는 뿌리내리지 못한 삶을 가리키며,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바람에 교회를 떠난 채 돌아오지 않은 이들이 그 예입니다.
핵심 포인트
- 나무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크기나 명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뿌리다.
- 우리가 그리스도께 뿌리내리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농부이신 하나님이 메마른 자리에서 우리를 옮겨 심으셨기 때문이다.
-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단수)에 온전히 해당하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이며, 우리는 그분 안에 접붙여져 그 복을 함께 누린다.
- 묵상(하가)은 조용한 사색이 아니라 말씀을 소리 내어 반복하고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 우리가 무엇을 즐거워하는지가 곧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 열매는 철을 따라, 필요에 따라 맺어지며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기에 맺어진다.
- 뿌리내리지 못한 믿음은 바람이 불면 날아가는 겨와 같다 — 은밀한 시간의 뿌리내림이 제자도의 깊이를 결정한다.
말씀 본문
시편 1:3 · 시편 1:2 · 시편 1:1 · 시편 1:4 · 시편 1:6
오늘의 묵상
마음에 남은 말씀
저는 오늘 말씀에서 '되새김질하는 동물처럼 말씀을 묵상하라'는 설명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그동안 성경을 몇 번 읽었는지만 헤아렸는데, 진짜 중요한 건 그 말씀을 다시 꺼내 곱씹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들으며 느낀 마음
저는 오늘 말씀을 들으며 제 신앙생활이 얼마나 '겉모습 관리'에 치우쳐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성경 통독표에 표시하는 것, 남들 보기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신경 쓰면서, 정작 그 말씀이 제 안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는 살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그 목사님이 성경 통독은 배속을 올려 빨리 넘기면서 좋아하는 드라마는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 다시 돌려봤다는 고백이 남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저도 관심 있는 뉴스나 콘텐츠는 몇 번이고 곱씹어 보면서, 성경은 하루 분량을 '해치우듯' 읽고 넘어갔던 순간들이 떠올라 부끄러웠습니다.
테네레의 나무와 암스테르담 마로니에 나무의 대조도 깊이 남았습니다. 저는 은연중에 '겉으로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 괜찮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은데, 그 마로니에 나무처럼 속은 텅 비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렵게 다가왔습니다.
반면 테네레의 나무는 아무도 보지 않는 땅속 깊은 곳에서 36미터를 뻗어나가며 조용히 생명을 이어갔다는 것이, 제가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얼마나 진실하게 말씀 앞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 단수로 쓰였고 그 대상이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라는 설명도 새로웠습니다.
저는 시편 1편을 늘 '이렇게 살면 복 받는다'는 자기계발서처럼 읽어왔는데, 사실은 제가 그렇게 살지 못했음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 복을 함께 누리게 되었다는 은혜의 메시지였다는 걸 다시 깨닫습니다.
오늘의 삶에 적용
이번 한 주는 성경을 읽는 방식 자체를 바꿔보려 합니다. 하루 분량을 빠르게 읽고 넘어가는 대신, 짧은 한두 구절이라도 읽은 뒤 책을 덮고 그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출퇴근길이나 설거지할 때처럼 손이 자유로운 순간에 오늘 아침 읽은 말씀 한 구절을 소리 내어 되뇌어보는 연습도 해보려 합니다. 또한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 — 드라마든 뉴스든 취미든 — 을 대하는 태도와 성경을 대하는 태도를 솔직하게 비교해보고, 그 격차가 크다면 왜 그런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인정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이번 주 겪게 될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마르틴 루터가 말한 '시련'의 단계로 받아들여서, 그 순간에 오히려 읽고 되새겼던 말씀을 붙잡아보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삶에서 '형통'을 환경의 문제로만 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고, 혹시 지금 원치 않는 상황이 있다면 그것이 제 영혼을 더 잘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여보려 합니다.
말씀과 나의 연결
말씀을 들으며 제가 얼마나 자주 성경 읽기를 "완료해야 할 일"로만 여겨왔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곱씹고 되새기기보다 빨리 끝내려 했던 제 태도가, 사실은 제가 무엇을 더 즐거워하는지를 정직하게 보여주는 증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말씀을 빨리 읽어치우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되새김질하듯 깊이 곱씹으며 마르지 않는 시내가 되신 주님께 날마다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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