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위임목사] 나를 따르라 (3) 사슴이 알려준 제자도의 비밀 (시편 42:1-11) | 2026.05.31 | 온누리교회

설교 주제 사슴이 알려준 제자도의 비밀 —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시작되는 자리
분류 이재훈 목사
설교 요약
이재훈 목사님은 "나를 따르라" 시리즈 세 번째 메시지로, 시편 42편 1~11절 말씀을 통해 "사슴이 알려준 제자도의 비밀"을 전합니다. 지난 두 주간 로마서 6장(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객관적 사실)과 요한복음 15장(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을 통해 배운 진리를 이어가며, 오늘은 그 객관적 사실과 우리 삶의 주관적 체험 사이를 잇는 다리가 바로 "갈망"이라고 강조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신앙의 정서」에서 참된 신앙에는 반드시 정서적 갈망이 나타난다고 가르쳤듯, 지식과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42편 1절,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라는 비유에서, 목사님은 낙타(몸에 물을 저장해 오래 견디는 동물)와 사슴(수시로 목을 축여야 하는 동물)을 대비시키며, 하나님은 우리를 낙타가 아니라 사슴으로 지으셨다고 강조합니다. 갈증을 느끼는 감각이 둔해지는 것이 건강의 위험 신호이듯, 영적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영적 건강의 위험 신호입니다.
목사님은 구원에 대한 의심이나 말씀에 대한 질문조차도 오히려 갈망의 표현일 수 있다며, 믿지 않는 사람은 그런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고 위로합니다. 2절에서 시편 기자가 갈망하는 것은 성전이나 예배 자체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 그분 자신이라는 점도 짚습니다.
목사님은 시편 기자의 갈망이 세 겹의 광야에서 깊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첫째는 사회적 광야 —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조롱(3절), 둘째는 물리적 광야 — 예루살렘을 떠나 북쪽 헤르몬산 지역에 있는 상황(6절, 압살롬의 반역 때 다윗의 도피로 추정), 셋째는 내적 광야 —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는가"(5, 11절)로 표현되는 영적 침체입니다. 목사님은 이 침체가 갈망 없는 매너리즘과는 다르며, 오히려 과거에 하나님과 깊이 친밀했던 사람만이 경험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17세기 십자가의 성 요한)이라고 설명하며, 배부름을 경험한 사람만이 깊은 배고픔을 안다는 비유를 듭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영적 침체」를 인용하며, 침체의 원인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말하지 않고,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말하도록 수동적으로 허용했기 때문"이라고 짚습니다. 옛사람의 부정적인 혼잣말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시편 기자처럼 자기 영혼에게 능동적으로 명령해야 합니다 —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는가…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5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성된 새 정체성(죄에 대해 죽은 자, 하나님께 산 자,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을 스스로에게 선포하는 훈련입니다.
이 갈망의 절정은 찬양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과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목사님은 주석가 크리스토퍼 애쉬의 통찰을 인용하며, 예수님 자신도 광야와 겟세마네와 십자가의 어둠 속에서 이 시편으로 기도하시며 자신의 영혼에게 믿음을 설교하셨다고 설명합니다. "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조롱을 십자가에서 직접 받으셨을 때도, 예수님은 아버지를 향한 갈망으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의탁하셨습니다.
우리는 낙타가 아니라 사슴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날마다 주의 임재를 갈망하는 삶이 곧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발걸음이라는 메시지로 설교를 맺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설교의 흐름
지식과 의지를 잇는 다리, 갈망
지난 두 주간 배운 객관적 사실(그리스도와의 연합,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과 우리 삶의 주관적 체험 사이를 잇는 다리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신앙의 정서」에서 참된 신앙에는 반드시 정서적 갈망이 나타난다고 가르쳤습니다.
설교의 흐름
낙타가 아니라 사슴 — 수시로 목말라야 하는 존재
낙타는 몸에 물을 저장해 오래 견디지만, 사슴은 수시로 목을 축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낙타가 아니라 사슴으로 지으셨습니다. 영적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건강의 증거가 아니라 위험 신호입니다.
설교의 흐름
세 겹의 광야 — 사회적, 물리적, 내적
시편 기자의 갈망은 사회적 광야("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조롱, 3절), 물리적 광야(예루살렘을 떠난 상황, 6절), 내적 광야("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는가", 5·11절)에서 깊어졌습니다.
설교의 흐름
영혼의 어두운 밤 — 침체는 친밀함을 경험한 자의 몫
영적 침체는 갈망 없는 매너리즘과 다릅니다. 오히려 과거에 하나님과 깊이 친밀했던 사람만이 경험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17세기 십자가의 성 요한)이며, 배부름을 경험한 사람만이 깊은 배고픔을 압니다.
설교의 흐름
자기 영혼에게 말하라 — 마틴 로이드 존스의 통찰
침체의 원인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말하지 않고,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말하도록 수동적으로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처럼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는가…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5절)라고 자기 영혼에게 능동적으로 명령해야 합니다.
설교의 흐름
갈망의 절정 — 예수님도 이 시편으로 기도하셨다
갈망의 절정은 찬양입니다. 예수님도 광야와 겟세마네와 십자가의 어둠 속에서 이 시편으로 기도하시며 자신의 영혼에게 믿음을 설교하셨고,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의탁하셨습니다.
핵심 포인트
- 객관적 사실(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주관적 체험 사이를 잇는 다리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다.
- 하나님은 우리를 낙타가 아니라 사슴으로 지으셨다 — 수시로 목말라하며 그분을 찾아야 하는 존재다.
- 영적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건강의 증거가 아니라 위험 신호다.
- 구원에 대한 의심이나 질문조차 믿음 없는 자에게는 없는, 갈망의 한 표현일 수 있다.
- 사회적·물리적·내적 광야가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깊어지게 한다.
- 영적 침체는 매너리즘과 다르다 — 과거에 하나님과 깊이 친밀했던 사람만이 겪는 '영혼의 어두운 밤'이다.
- 침체를 이기는 길은 자기 자신에게 끌려가지 않고, 자기 영혼에게 능동적으로 믿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말씀 본문
시편 42:1 · 시편 42:2 · 시편 42:5 · 시편 42:3 · 시편 42:11
오늘의 묵상
마음에 남은 말씀
저는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낙타가 아니라 사슴'이라는 비유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신앙을 몰아서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던 제 방식이 사실은 낙타처럼 살아가려는 시도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들으며 느낀 마음
저는 그동안 영적 갈증을 잘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오히려 '안정된 신앙'이라고 착각해왔던 것 같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특별히 목마르지도 않고, 그저 습관처럼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것을 신앙의 성숙이라고 여겼는데, 오늘 말씀은 그것이 오히려 위험 신호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갈증을 느끼는 감각이 둔해지는 것이 몸의 병의 신호이듯,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사라진 상태도 영적으로 병들어가고 있다는 신호라는 설명이 뜨끔하게 다가왔습니다. 또한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는 개념도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마음이 무너지고 낙심될 때마다 그것을 신앙이 약해진 증거로만 여기고 자책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과거에 하나님과 깊이 친밀했던 사람만이 느끼는 배고픔일 수 있다는 설명은 제 지난 침체의 시간들을 다시 보게 해주었습니다. 배부름을 경험한 사람만이 깊은 배고픔을 느낀다는 비유가 특히 인상 깊었는데, 제가 예전에 하나님과 더 가까웠던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허전함도 그만큼 크게 느껴지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마틴 로이드 존스의 '우리 자신에게 말하지 않고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말하도록 허용했다'는 통찰이 제 하루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저는 정말 하루 종일 제 안의 목소리 — 대부분 비교하고 낙심시키고 불안하게 만드는 말들 — 를 그냥 수동적으로 듣고만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늘의 삶에 적용
이번 한 주는 아침에 눈을 뜰 때와 잠들기 전, 하루에 최소 두 번은 시편 기자처럼 제 영혼에게 직접 말을 걸어보려 합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는 구절을 제 상황에 맞게 바꿔서 소리 내어 선포해보고 싶습니다.
또한 하루 중 마음이 조급해지거나 무기력해질 때, 그것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잠시 멈춰서 '지금 내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나를 끌고 가고 있는가'를 점검해보려 합니다. 부정적인 혼잣말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대신, 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새로운 정체성 — 죄에 대해 죽은 자, 하나님께 산 자,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 — 을 스스로에게 다시 선포하는 연습을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요즘 제 신앙이 낙타처럼 '몰아서 채우는' 방식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짧더라도 매일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여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져보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갈망의 절정이 찬양이라는 말씀을 따라, 힘든 순간일수록 오히려 찬양을 선택해보는 시도를 해보고 싶습니다.
말씀과 나의 연결
말씀을 들으며 제가 겪었던 낙심의 시간들이 사실은 하나님과 멀어진 증거가 아니라, 한때 깊이 경험했던 친밀함을 그리워하는 갈망의 다른 얼굴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보니 그 시간들이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하나님, 제 안의 목마름이 둔해지지 않게 하시고, 낙심될 때마다 제 영혼에게 주님을 바라라고 선포하며 찬양의 자리로 나아가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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