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기막힌 새벽 #2285] 남을 살리는 말, 남을 죽이는 말

설교 주제 모함과 험담을 버리고 사람을 세우는 바나바의 삶을 본받기
분류 김동호 목사
설교 요약
본 설교는 창세기 39장에 등장하는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요셉을 모함한 사건을 통해 우리의 일상 속 허물과 험담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 앞에 우리 안의 죄악된 본성을 직면하게 만듭니다.
또한 남을 깎아내리는 자리에서 벗어나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사도 바나바의 모습을 닮기를 권면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서로를 세워주는 귀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보디발 장군의 아내와 같은 모함하는 심보를 버리고,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바나바와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설교의 흐름
들어가는 말
날마다 김막힌 새벽을 통해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원고를 쓰고 녹화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참으로 큰 즐거움과 축복입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지혜를 얻기 때문입니다.
이 깨달음을 삶에 심어볼 때 하나님 나라의 열매가 맺히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현장이 됩니다. 오늘도 주시는 말씀을 통해 소중한 하나님 나라의 지혜를 얻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매일 말씀을 전하고 나누는 이 소중한 과정 속에서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 깊이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설교의 흐름
말씀을 읽으며
창세기 39장에는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다가 거절당하자 그를 모함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유혹해 놓고는 오히려 요셉이 자기를 희롱하러 들어왔다고 거짓말하며 옷을 버려두고 도망갔다고 뒤집어씌웠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은 살아서 나오기 힘든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엄중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성적으로 유혹한 것뿐만 아니라 거짓말로 한 사람을 죽음의 자리로 몰아넣은 것은 매우 악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기록하신 이유는 우리 역시 일상에서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설교의 흐름
핵심 메시지
십계명 중 아홉 번째 계명은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우고 위험에 빠뜨리는 거짓말은 거의 살인과도 같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바로 이 구계명을 범한 장본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뒤에서 남의 말하기를 즐거워하며 처음에는 사실을 말하는 듯하다가 점차 살을 붙여 험담하고 매장시키려 합니다.
우리는 타인의 눈 속의 티는 잘 보면서도 정작 자신 안에 있는 보디발 장군의 아내와 같은 추악한 본성은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남의 허물을 들추고 깎아내리는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설교의 흐름
삶으로 이어지는 권면
뒤에서 남의 말 안 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장점을 말해주고 가치를 높여주는 사람이 되면 더욱 멋질 것입니다. 성경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나바는 권면하고 위로하는 자로서 회심한 사울을 사람들이 기피할 때 기꺼이 그를 변호해 주었습니다.
바나바의 진심 어린 추천 덕분에 교회는 사울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는 위대한 사도 바울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만약 바나바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사도행전에 나타난 놀라운 역사들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가정과 교회 안에서 남을 헐뜯기보다 사람을 키우고 세우는 바나바의 정신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설교의 흐름
맺음말
우리는 보디발 장군의 아내처럼 남을 모함하고 함정에 빠뜨리는 실수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험담과 파괴적인 본성을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사 오해받는 이들을 변호하고 세워주는 바나바의 마음을 품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가정과 일터와 교회 공동체 속에서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 나라의 큰 일꾼들을 키워내는 귀한 직분자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핵심 포인트
-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삶에 심을 때 하나님 나라의 열매가 맺힙니다.
- 보디발 장군의 아내는 유혹이 실패하자 요셉을 악의적으로 모함했습니다.
- 요셉은 모함으로 인해 왕의 죄수들이 갇히는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 십계명의 아홉 번째 계명은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 사람들은 흔히 뒤에서 남의 허물을 과장하고 험담하기를 즐거워합니다.
- 남의 잘못은 쉽게 보면서도 자신의 내면의 죄성은 간과하기 쉽습니다.
- 사도 바바나는 오해받던 사울을 변호하여 위대한 일꾼으로 세웠습니다.
- 우리는 남을 깎아내리는 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 본문
창세기 39장 13절~18절 · 사도행전
오늘의 묵상
마음에 남은 말씀
우리는 보디발 장군의 아내처럼 남을 헐뜯고 모함하는 연약한 본성을 지니고 있지만, 성령의 은혜 안에서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바나바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말씀이 깊이 다가옵니다. 남의 허물을 찾아내어 깎아내리기 바빴던 제 자신의 지난날을 조용히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의 따뜻한 손길이 제 마음을 만지시어 이제는 험담 대신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사람으로 빚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두고 묵상할 때마다 제 안에 숨겨진 날카로운 시선들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것을 느낍니다.
이 은혜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조용히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들으며 느낀 마음
설교를 차분히 들으며 그동안 무심코 던졌던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나 모함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성경 속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 요셉을 무자비하게 몰아세웠듯, 저 역시 제 허물을 가리기 위해 남의 흠집을 부풀려 이야기했던 적이 부끄럽게 떠올랐습니다.
남의 눈에 있는 작은 티는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내 눈 속의 커다란 들보는 보지 못했던 위선적인 모습을 깊이 회개하게 됩니다. 바나바가 두려움과 편견 속에 있던 사울을 따뜻하게 품고 변호해 주었던 것처럼, 저 또한 주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세워주는 넉넉한 마음을 품고 싶습니다.
일상의 소란함 속에서도 이 말씀을 붙들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지혜로운 삶의 방향을 비로소 발견하게 됩니다. 나의 작은 언행이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아니라 살리는 생명의 길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해 봅니다.
오늘의 삶에 적용
이른 아침 가게 문을 열며 오늘의 매출과 찾아올 손님들을 생각할 때 막연한 불안감이 스쳐 지나갈 때가 많지만,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먼저 마음의 빗장을 열고 손님들을 따뜻한 미소로 맞이하기로 조용히 다짐합니다. 중요한 거래와 비용 지출을 앞두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문득 엄습하는 두려움 속에서도, 남을 탓하거나 거짓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 않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대처하겠다는 작은 행동을 선택합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늦은 밤 홀로 가게를 정리하며 가족과 함께 맞이할 다음 날을 준비할 때, 거창한 성공보다는 오늘 하루도 정직하게 버텨낸 서로를 격려하며 따뜻한 눈빛을 건네는 부드러운 아버지가 되기를 조심스럽게 소망합니다.
말씀과 나의 연결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남의 말을 쉽게 하고 내 이익을 위해 타인을 평가하려던 제 부끄러운 모습이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행동과 겹쳐져 마음이 깊이 찔렸습니다. 또한 거래처와의 치열한 이권 다툼이나 불안한 결정의 순간들 앞에서 정직을 지키기보다 변명과 핑계를 찾으려 했던 제 연약함을 솔직하게 직면하게 됩니다.
하루의 고된 노동이 끝난 저녁 시간에 가족들과 마주 앉아 서로의 하루를 보듬을 때, 비판과 험담의 언어가 아니라 바나바처럼 서로의 가치를 높여주고 힘을 실어주는 격려의 언어를 건네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평범한 자영업자의 삶이라는 무게 속에서도 말씀이 지향하는 따뜻한 시선과 실천을 놓치지 않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채워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저마다의 무거운 책임을 안고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보디발 장군의 아내처럼 남을 헐뜯고 모함하던 어리석은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함으로 제 거친 입술과 마음을 다스려 주시고, 오해받는 이들을 기꺼이 품어 세워주었던 바나바처럼 저도 주변 사람들을 살리고 격려하는 따뜻한 일꾼으로 삼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