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2 | 믿음은 희망의 불씨입니다 | 이찬수 목사 | 분당우리교회 주일설교

설교 주제 복음의 능력 회복과 임재·기도·믿음
분류 이찬수 목사
설교 요약
본 설교는 영적 침체와 절망 속에서 무능함과 소모적인 논쟁에 빠진 이들에게 참된 복음의 능력을 되찾는 길을 전합니다. 변화산의 영광보다 산 아래 고통받는 이들을 향하셨던 예수님의 시선처럼,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내게로 나아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일상 속 기도의 끈을 놓지 않으며, 겨자씨만 해도 생명력 있는 믿음을 회복할 때 비로소 일상의 절망을 이길 힘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논쟁하는데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그 불쌍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눈물에 관심이 있으시거든요.
설교의 흐름
들어가는 말
설교자는 후배 목사님들과 대화할 때 잘 들리는 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신의 두 가지 과거 경험을 나눕니다. 20대 초반 이민 초기 삶의 극한 고통 속에서 교회를 찾았을 때, 자신의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는 듯한 설교에 분노했던 기억은 오늘날 힘들고 지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들려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게 만든 첫 번째 계기였습니다.
또한 중고등부 사역을 하며 스마트폰을 보며 설교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관찰하고 소통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10년의 세월은 성도들의 절실한 필요를 복음으로 풀어내야 한다는 목회적 태도를 굳히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귀신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의 절망은 이민 시절 자신의 아픔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의 황홀한 영광에 머물기를 원했던 베드로의 요청을 뒤로하고, 산 아래서 고통당하며 낙심하던 아 아버지와 아들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설교의 흐름
말씀을 읽으며
본문에서 극심한 고통 속에 아이를 고쳐 달라고 찾아온 아버지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악한 서기관들과 무익한 논쟁에 빠져 무능함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무엇을 변론하느냐고 물으실 때 너무 답답했던 아버지가 툭 튀어나와 제자들이 아이를 고치지 못했다고 절규하듯 호소합니다.
설교자는 이 장면을 묵상하며 자신의 목회적 자화상을 돌아보고,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이유 역시 능력을 잃어버린 채 쓸데없는 시시비비와 논쟁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지 자문합니다. 예수님은 네가 옳고 내가 그르다는 식의 소모적인 논쟁에 전혀 관심이 없으시며, 오직 불에 넘어지고 물에 넘어지는 불쌍한 영혼들의 아픔과 눈물에 깊은 관심을 두십니다.
절망적인 상황을 단번에 희망의 반전으로 바꾸어 놓은 원동력은 바로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신 예수님의 짧고 강렬한 한마디였습니다. 이 한마디는 오늘날 형식을 뛰어넘어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께 나아오는 모든 상한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초청이자 구원의 손길입니다.
설교의 흐름
핵심 메시지
잃어버린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임재를 온전히 회복해야 합니다. 임재란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코람데오의 태도로, 눈앞의 문제에 매몰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놓치고 쓸데없는 논쟁에 집중하게 됩니다.
둘째로 기도를 회복해야 하는데, 여기서 기도는 단순히 종교적 행위를 카운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지속적으로 연결되도록 돕는 생명의 끈입니다. 일상의 걸음과 운전 중에도 눈을 뜨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나아갈 때 기도는 삶의 무거운 과업을 견디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겨자씨와 같은 생명력 있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믿음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자라나는 생명력의 문제이기에, 완벽하지 못한 베드로처럼 연약할지라도 주님 앞에 나아가 나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을 때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게 됩니다.
설교의 흐름
삶으로 이어지는 권면
설교자는 교회의 형식이나 순서에 얽매이기보다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집중하고 마음을 다해 예배드릴 때 참된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고 권면합니다. 과거 일만 성도 파송 운동을 앞두고 두려움 속에 매일 새벽에 무릎 꿇었던 시간들은 인간적인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깊은 친밀감을 누리게 된 소중한 통로였습니다.
완벽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겨자씨만한 믿음의 생명력으로 소리 질렀던 아버지처럼, 우리 역시 주님 앞에 우리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내어놓아야 합니다. 예배는 갑작스러운 환호나 외적 치유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마음의 먹구름을 물리치고 한 주를 다시 살아낼 수 있는 희망의 에너지를 품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스타일과 방식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주님을 찬양하며,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믿음의 결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설교의 흐름
맺음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감찰하십니다. 논쟁과 말다툼이 가득한 교회가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말씀의 능력을 실제로 경험하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소리를 지르게 만드는 복음의 역사가 예배마다 나타나야 합니다.
세대를 뛰어넘어 청년들과 3040 세대, 그리고 모든 성도가 함께 주님의 임재 앞에 나아와 마음을 다해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다가오는 한 주간을 거뜬히 살아내게 만드는 영적 재료이자 능력의 도구입니다.
성도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다음 세대와 가정과 교회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손길을 매일의 삶에서 기쁨으로 누리게 됩니다.
핵심 포인트
- 이민 초기와 중고등부 사역을 통해 절실한 필요에 닿는 설교의 중요성을 깨달음
- 변화산의 영광보다 산 아래 고통받는 아버지를 향하셨던 예수님의 긍휼
- 제자들이 능력을 잃어버린 채 서기관들과 무익한 논쟁에 빠진 모습 성찰
-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신 주님의 한마디가 주는 절망 속 희망의 반전
- 임재의식 회복을 통해 쓸데없는 논쟁에서 벗어나 가정과 공동체를 살림
- 기도를 종교적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임재를 유지하는 생명의 끈으로 이해함
- 믿음은 크기가 아니라 겨자씨 같은 생명력의 문제임을 깨달음
-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달라는 아버지의 고백처럼 연약함을 주께 아뢰기
- 예배가 한 주간을 살아내는 능력과 에너지가 되도록 주님을 온전히 의지함
말씀 본문
마가복음 9장 17절 · 마가복음 9장 19절 · 마가복음 9장 28-29절 · 이사야 6장 1절 · 히브리서 4장 12절 · 마태복음 17장 17-20절
오늘의 묵상
마음에 남은 말씀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는 주님의 짧은 음성은 내 마음에 조용히 내려앉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눈앞의 막막한 현실과 복잡한 생각 속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주님은 멀리서 지켜보시는 것이 아니라 내 아픔의 현장으로 직접 찾아와 손을 내미십니다.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어 주저앉고 싶을 때 이 말씀을 나직이 되새기면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이 온기로 채워집니다. 주님은 나의 연약함과 부끄러움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당신의 품으로 나아오라고 다정하게 이끌어 주십니다.
그 따뜻한 부름 앞에 가만히 마음을 쏟아놓는 것만으로도 영혼에 서서히 평안이 스며드는 것을 느낍니다.
들으며 느낀 마음
설교를 차분히 들으며 나의 일상과 신앙의 자리를 조용히 돌아보게 됩니다. 때로는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는 익숙함 속에서 정작 하나님의 임재를 잊어버린 채 사소한 일들에 마음을 뺏기고 논쟁하듯 날카로워질 때가 많았습니다.
내 힘으로 가정을 돌보고 관계를 풀려고 아등바등할수록 마음에는 피로와 공허함만 깊어졌음을 깨닫습니다. 변화산의 황홀함보다 산 아래 고통받는 이의 눈물을 먼저 보신 예수님의 시선은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기도를 거창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과 일상 속에서 숨을 쉬듯 이어지는 연결의 끈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마음의 짐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완벽한 믿음이 아니라 겨자씨만 해도 그 속에 품은 생명력으로 주님을 향해 손을 내미는 그 작은 마음을 주님은 기쁘게 받으신다는 사실이 큰 위로로 다가옵니다.
오늘의 삶에 적용
식사를 준비하거나 집안일을 정리하는 평범한 시간 속에서, 마음이 조급해질 때마다 짧은 기도로 주님의 임재를 구해보려고 합니다.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과 대화할 때 내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먼저 상대방의 아픔과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부드러운 태도를 지니고 싶습니다.
돌봄과 일상이 겹쳐 몸과 마음이 지치는 날에도 거창한 결심 대신 주님 앞에 조용히 나의 연약함을 털어놓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여유를 가져봅니다. 스마트폰이나 세상의 분주한 소리에서 잠시 벗어나 하나님과 깊이 대화하는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매일 조금씩 지켜나가기로 다짐합니다.
내 안의 작은 믿음의 불씨가 일상의 소소한 선택과 미소를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온기로 전해지기를 조심스럽게 소망해 봅니다.
말씀과 나의 연결
설교 속에서 만난 절망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분주한 일상 속에서 지쳐가던 나의 평범한 자화상과 닮아 있습니다. 눈앞의 일들을 처리하느라 마음이 팍팍해질 때, 주님은 내 일상의 작은 모퉁이로 찾아오셔서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며 다정하게 손을 잡아 주십니다.
대단한 믿음이나 거창한 성취가 없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것 자체가 이미 은혜의 시작임을 깨닫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돌보는 평범한 주부의 하루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살아갈 때, 일상은 불평의 자리가 아니라 감사와 기도의 예배가 됩니다.
말씀이 내 삶의 구체적인 에너지가 되어 거친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잔잔히 주님의 길을 따라가게 만들어 줍니다.
사랑의 하나님, 주저앉고 싶은 일상 속에서 날마다 나의 이름을 부르시며 내게로 나아오라 손 내밀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흩어진 마음을 모아 주님의 임재를 구하오니, 내 안에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을 붙들어 주셔서 한 주를 살아낼 따뜻한 힘과 생명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